🌸겨울 끝자락의 따스한 햇살이 반가운 요즘입니다. 다들 봄의 징조를 만끽하고 계신가요? 3월은 꼭 모두가 출발선에 서 있는 시기 같아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설레기도 하지만, 겨우 겨울을 견뎌 내었는데 또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는 게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죠.
돌아보면 지나간 시간은 빠르게 흐른 듯한데,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은 왜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질까요? 그럴 때는 아주 오래 존재해온 것들에 마음을 기대고 싶어집니다. 한 마을을 꿋꿋하게 지킨 고목이나, 깨지기 쉬운 몸을 가지고 수백 년을 살아온 도자기 같은 것들 말이에요.
이번 레터에서는 오랜 시간 이 세상에 존재해온 ‘유물’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봄으로 발을 내딛기 전에 잠깐 멈춰서, 겨울을 견뎌낸 나를 다독여주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만한 가치를 지니는 유물들이 당신의 심호흡을 도와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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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에서 배우는 삶의 모양
지난 2022년 7월,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통도사 기둥 위에서 조선시대 분청 사발 하나가 발견되었어요. 통일신라 때 사용했던 단청 그릇이 1974년 경북 경주 월지에서 발견된 이후 두 번째라고 합니다. 이 사발은 물감 그릇으로 밝혀졌는데요. 1759년 시행된 단청 공사 당시, 단청을 그리던 승려가 그릇을 깜빡 두고 내려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발 안에는 물감 안료가 굳은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통도사 성보 박물관장 송천 스님은 기자간담회에서 “채기에 남아있는 안료를 통해 중수 당시의 단청에 사용된 안료와 조색 방법, 물감의 사용방법 등을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라며 “고가의 채색 재료라고 할 수 있는 단청용 안료를 어디에 담아 사용했는지에 대해 그동안 추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그릇의 온전한 형태를 알 수 있게 되었다”라고 채기를 소개했습니다. 기둥 위에 물감 그릇을 두고 내려온 스님이 자신의 실수를 몰랐을지, 어쩌면 알았음에도 그릇을 가져오는 것을 미뤘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실수가 시간이 지나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죠. 어떤 실수는 260년 만에 전혀 생각지 못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실수 또한, 우리의 삶에 어떤 모양으로 자리 잡게 될지 아직은 모르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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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츠 맨 - 문화재를 위해 목숨을 건 특수부대
모뉴먼츠 맨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결성되었던 특수부대입니다. 전쟁 당시 히틀러는 많은 나라를 공격하면서 얻은 예술품들을 전리품으로 삼았습니다. 그 양이 무려 약 21000여 점에 달한다고 해요. 그러나 패전이 이어지자, 히틀러는 ‘네로 명령서’라는 서류에 서명을 합니다. 그 내용은 ‘가까운 장래에 적의 전쟁 수행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독일 영토 내의 모든 군의 수송 통신, 공업시설, 그리고 가치 있는 그 밖의 다른 무엇이든지 파괴하라.’는 것이었어요. 이 말은 즉 연합군에 의해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쓸모 있는 물건을 없애라는 것이었죠. 거기에는 히틀러가 전리품으로 삼은 수많은 문화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대로 엄청난 수의 문화재를 잃을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박물관장, 큐레이터, 건축가 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포함된 특수부대가 결성되었어요.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뛰어들어가 많은 문화재를 구해냈습니다. 그중에는 로댕의 조각상, 르누아르와 피카소의 그림,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 등 현대에 굉장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이들의 활동이 크게 지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활동이 때로는 작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본인들만의 가치를 치열하게 지켜낸 그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구독자분들도 현재 본인이 가치롭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자신을 믿고 끝까지 지켜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뉴먼츠 맨을 소재로 다룬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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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한 사랑을 발굴하는 사람, 고고학자
이 책은 고고학자 강인욱이 유물과 고고학에 대한 경험을 기록한 저서예요. 작가는 이 책에서 “고고학이란 유물과 유적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 썼던 사람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고고학자가 무덤에서 발굴하는 것은 대개 말라비틀어진 뼛조각, 그리고 토기 몇 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무덤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던 과거 사람의 슬픔, 그리고 사랑이 깃들어 있다. 수천 년간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 속에서 그 사랑의 흔적을 찾아낸다는 점에서 고고학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밝히고 있어요. 하나의 유물을 발견한다는 것은 곧 하나의 삶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이미 소멸해버린 삶과 사랑을 들여다 보는 데에 평생을 기울이는 사람들, 고고학자는 정말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직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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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유물에 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에피소드 두 가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고고학자들이 사랑한 삶과 사람의 흔적을 가볍게 만나보세요.
▪️초원의 왕도 벌벌 떨게 만든 것
200여 년 전 크림 반도 쿨 오바라는 곳에서 대형 고분 하나가 발굴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분에서 발견된 황금 단지에는 특이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왕족이 겁에 질린 얼굴로 입을 벌려 전쟁 중 급하게 이를 뽑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 고대 초원의 전사들도 각종 치통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일 질긴 고기를 씹고, 흔들리는 말 위에서도 이를 악물고 활시위를 당겨야 했으니 말이에요.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던 왕족인데, 직접적으로 공유하는 치통이라는 감각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세상에 존재했던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신의 뜻을 받는 뼈
3500년 전 중국에서 유행했던 ‘복골’이라는 풍습이 있습니다. 복골은 거북의 등딱지나 사슴에 견갑골을 불에 그슬러,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풍습이에요. 한국에서도 약 2000년 전에 만들어진 남해안의 패총들(원시인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쌓여 이루어진 무더기)에서 복골이 제법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삼국 시대 이후로 거의 사라졌는데, 이는 불교 같은 종교가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샤먼의 풍습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박물관에 있는 투박한 불상이나 녹슨 십자가, 무심히 놓인 복골 같은 유물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그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소원이 깃들어 있을까 생각해 본다면 유물이 조금은 달라 보일 것이다.”라고 말해요. 복골이라는 풍습을 통해, 불운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단단한 뼈에 마음을 기댔던 옛사람들을 이해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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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다림’
최근 건설 공사가 많아지면서 한국에서는 전체 발굴의 90% 이상이 구제발굴이라고 합니다. 구제발굴이란, 건물이나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땅속에 있는 유적이 불가피하게 파괴될 때 공사에 앞서 미리 유적을 발굴하는 것을 말해요. 정말 중요한 유적이라면 공사가 중단되거나 유적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발굴이 끝나면 건물들이 들어서고 영영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저자는 구제발굴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밝힙니다. 발굴의 기술은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지금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발굴했다고 해도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난 뒤에 우리의 후손들이 본다면 아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적절한 때에 발굴해야만 온전한 형태의 유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빠른 사회에 발맞추기 위한 조급함이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나를 끌어다 쓰게 만들어요. 그러나 빛나기 위해 오랜 기다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속함이 아닌 조금 더 긴 기다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시기에 가장 온전한 당신을 발굴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긴 생을 통과하는 중인 여러분을 응원하면서 레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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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침묵의 미래>
내가 사라져가는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다면 어떨까? '소수 언어 박물관'에 사는 마지막 화자들의 이야기. 오래 지켜왔지만 그렇기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언어의 영혼을 느낄 수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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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의 물음표
내가 가진 것 중 후대에 남겨주고 싶은 물건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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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학 작품을 토대로 10일마다
다채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큐레이션하여 들려드립니다.
더 많은 문밖이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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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outdoor_next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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