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볕의 계절을 잘 보내고 계시나요? 때이른 무더위에 서둘러 여름 날 준비를 하는 요즈음입니다.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앉아 있다 보면 문득 창밖을 바라보게 되는데요. 햇빛에 반사된 풍경을 마주하자니 부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먼 휴양지나 호캉스, 혹은 울창한 숲으로 말이에요.
코앞까지 다가온 7월을 맞이하며, 이번 문밖레터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름의 청량감을 더 다채롭게 느끼기 위해. 여러분도 휴가 계획으로 들뜬 마음들을 모아 함께 문을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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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의된 여행
여행이라는 글자를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대부분 즐거움, 기대, 도전 등 가슴 뛰는 단어가 주를 이룰 것 같아요. 여행을 뜻하는 ‘travel’의 어원은 고대 프랑스 단어인 ‘travail’에서 파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travail’은 의외로 일, 노력, 고통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어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먼 곳으로 떠나는 일이 고역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여행은 기차의 탄생과 자본주의의 정착으로 여가 개념이 생긴 19세기 후부터 의미가 재정립됩니다.
오늘날의 여행은 오락 혹은 휴식으로써 개개인의 삶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여기저기 떠도는 유목민 시대를 거쳐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21세기를 맞아 다시 유목민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때때로 우리는 이국의 풍경 앞에 서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감각을 무디게 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로 뛰어드는 것은 큰 감수성을 불러오거든요. 고되고 당황스러운 일을 겪게 된다고 해도 말이죠. 여행 도중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경우는 빈번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의 여행이 어원으로부터 그리 멀어진 건 아닐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고통은 비를 흠뻑 맞아보게 하거나 파도에 올라타 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결국 여행을 통한 새로운 경험과 용기는 우리의 방어벽이 되고, 또 다른 성장의 발판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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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떠나는 루트
올해의 여름휴가 트렌드는 어떨까요? 부킹닷컴이 오는 7~8월 휴가철 투숙 기준 전 세계의 검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일본이 상위권을 차지했어요. 도쿄, 교토, 오사카가 차례대로 1~3위에 이름을 올린 덕분입니다. 최다 검색어 순위에는 서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전년도에 비해 검색량이 약 169% 증가하며 4위를 달성했습니다. 세계적으로 한국 여행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지표예요.
반면, 국내 여행객들은 도쿄, 파리, 다낭, 싱가포르 등 해외 여행지를 많이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많이 간다고 해서 반드시 나에게 좋은 여행지인 것은 아니에요. ‘내가 삶의 어떤 지점에서 여행을 떠나는가’, ‘여행의 목적은 무엇인가’와 같은 요소들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그저 가벼운 산책이라고 해도,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경로를 따라간다면 그것 역시 여러분만의 여행이 될 수 있어요. 이번 여름에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떠나보는 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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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동력, MZ세대
최근 들어 국내 트렌드 변화 주기가 빠르게 짧아지고 있습니다.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 김은용 소장은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리퀴드 소비의 확대와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어요. ‘리퀴드 소비’란 고정적이지 않고 변화가 많은 소비를 의미합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여행 형태도 다변화되었습니다. 일과 휴가를 병행하는 워케이션부터 로컬 관광, 친환경(탄소중립) 여행, 촌캉스, 스포츠케이션 등 여러 가지 유형이 생겨났어요. 업계들 또한 원하는 가치에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하는 MZ세대를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 발 빠른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MZ세대의 또 다른 특성은 ‘경험’과 ‘체험’을 중요시한다는 것이에요. 이에 주말이나 하루 연차를 활용한 짧은 여행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단기간 안에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다 보니 등산이나 걷기 등 야외활동을 비롯하여 캠핑, 골프 등 취미 여가 활동을 위해 여행을 준비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했어요. 이는 몇 없는 여유로운 일상을 여행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자가 선호하는 여행의 모습이 있겠지만, 때로는 새로운 주제로 떠나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취향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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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찍어주는 쉼표
<여행하는 소설>은 장류진, 윤고은, 기준영, 김금희, 이장욱, 김애란, 천선란 총 일곱 작가가 여행을 테마로 쓴 단편 소설들을 엮은 책입니다. 팬데믹 당시, ‘떠나지 못하고 머무는 우리의 지금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모았다고 해요. 물론 지금도 책의 의미는 유효합니다. 개개인의 사정으로 떠나지 못하는 여러분에게, 답답한 일상 속 작은 쉼표가 되어줄 거예요.
책의 머리말에는, “일이든 유람이든 여행의 목적보다는 떠남의 경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적혀있습니다. 또한 “세상은 여행자인 우리에게 무한히 열려 있고, 우리는 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해요. 여행은 완벽해야 하고 또 특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스스로를 짓누를 때가 있어요. 그래서 떠나기를 미루기도 하죠. 하지만 여행의 중요한 점은 미지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것 그 자체입니다.
한 번쯤 정체되어 보았을 여러분에게 이 책을 전합니다. 부디 여행의 의미를 재설정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무수한 일탈과 변덕으로 점철될 시간들을 함께 즐겨봐요.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실패한 여행은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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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화합
네 번째 순서로 실려 있는 「모리와 무라」는 김금희 작가의 작품입니다. 단편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도 수록되어 있어요.
소설은 화자인 다정이 2년 전의 일본을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숙부의 제안에 떠나게 된 여행은 하필이면 태풍이 온 8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마인 해경까지 포함하여 도착한 후쿠오카의 유후인. 그 온천 마을에서 세 사람은 이틀 내내 료칸에만 머무릅니다.
다정은 료칸에서 숙부의 이상한 모습을 몇 차례 포착합니다. 온천욕을 하러 간 줄 알았던 숙부가 한참 개들만 구경하다 돌아온다거나 숲 쪽에 서 있는 검정 물체를 향해 난다요, 하며 묻는 행동. 또 사촌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길 꺼리고, 그날 밤 목이 꺾인 사람처럼 서서 아무것도 없는 숲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게 돼요.
이는 모두 자신이 사촌의 죽음에 가담했다고 생각하는 숙부의 죄책감이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결국 다정은 그해 겨울 심장 질환으로 떠난 숙부를 떠올리며, 그의 안에 맺혀있던 ‘부끄러움’과 ‘후회’를 발견합니다. 그동안 숙부를 이상하고, 껄끄러운 사람으로 여기던 다정의 인식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어쨌든 그 여름 그 여행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의 가계,
나의 숙부의 삶을 요약하게 된 것이었다.”
어딘가 어색한 조합이면서도 ‘가족’이라는 틀 안에 묶여있던 세 사람. 오히려 서로에게 말 못 할 사정이 많은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그 간격을 좁혀줬습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어요. 이처럼 여행은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하는 창구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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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여정
천선란 작가의 「사막으로」는 SF 여행 소설입니다. 공기 중에 가득 차 있는 미세먼지 탓에 방독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계를 그리고 있어요.
소설 속 화자의 여정은 “사막에 대해 글을 써보는 건 어떠니?”라는 아버지의 한 마디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던 그녀는 사막에 가본 적 없다는 말로 거절을 대신해요. 그때 아버지가 한 대답이 이 소설의 중심이자, 자신과 화자의 삶을 관통하는 문장으로 남습니다.
“사람이 보는 것을 쓰는 건 아니잖니. 본다고 믿는 것을 쓰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출장 중이던 아버지는 사막의 밤을 봤다고 얘기합니다. 은하수가 흘렀고 사방에 별이 깔려있었으며, 마치 나에게 우주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고요. 화자는 단지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물리학과에 진학하게 됩니다. 그러나 3년 전부터 병을 앓고 있던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모든 기억을 잃게 되고, 화자와 아버지는 각자 항공연구원 자리와 해외 출장을 포기하며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를 지킵니다.
아버지는 종종 해외에 있는 동안 겪었던 일들을 엄마와 공동의 추억으로 탈바꿈해 말합니다. 엄마는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가 끝내 그랬지, 하고 대답해요. 사막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사람은 퇴원하면 사막으로 가자는 약속을 하지만, 정작 10년 후 사막에 간 사람은 화자였어요. 그곳에서 사실 아버지는 사막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화자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아요. 화자 역시 보지 않은 우주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곳에 아직 별이 뜬 사막이 있을까.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사막으로」에서, 여행은 본다고 믿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지면서 믿음을 이어나가도 되는지 확인하세요. 언젠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단단한 무언가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오늘의 편지가 여러분을 어딘가로 데려다주었길 바랍니다.
그럼 낯선 곳으로 떠나는 감각을 익히며, 이번 문밖레터를 마치겠습니다.
<여행하는 소설>이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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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스무 번째 문에서는 ‘문밖의 여름’이라는 주제로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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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웰스, <애프터썬>
소피는 20년 전, 아빠와 함께 갔던 튀르키예 여행을 떠올린다. 그 당시 캠코더로 찍었던 영상을 틀어놓고 추억에 잠기는데...
잔잔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거대한 상실과 사랑을 마주할 수 있는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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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의 물음표
여행에 대한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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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전시 콘텐츠를 위주로 큐레이션 합니다.
10일마다 삶과 마음을 이어주는 이야기들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더 많은 문밖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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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outdoor_next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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