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저분하게 쌓인 감정을 털어내고 싶을 때면,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합니다. 순간 이동을 하거나, 히어로가 되어 지구를 지키기도 하죠. 실재할 수 없는 세계라는 걸 알면서도 아주 잠깐은 그 안에서 해방감을 느끼곤 해요. 여러분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어떤 상상을 하시나요?
이번 레터에서는 환상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하려 합니다. 지칠 때 위안이 되는 세계를 함께 떠올려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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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을 메우는 상상의 힘
판타지(fantasy)는 환상과 공상을 뜻하는 영단어입니다. 장르서사 속에서는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요소를 담은 이야기”로 통용돼요.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한 SF와는 차별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판타지 장르는 1954년, J.R.R. 톨킨이 집필한 <반지의 제왕>에서 출발했습니다. 언어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였던 그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난쟁이 드워프나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 또 영국 민담에 등장하는 마법사와 호빗족에 관심을 가졌다고 해요.
이에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판타지 소설의 시초’라고 불리는 작품이 탄생합니다. 바로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예요. 대중적인 인지도를 형성한 첫 작품이었기에, 한국 판타지 소설의 장르 확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영화이론가 수잔 헤이워드에 따르면, “판타지는 우리 무의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억압하는 영역, 즉 무의식의 영역과 꿈의 세계를 가장 쉽게 반영한다.”고 합니다.
결국 판타지 장르는 현실의 결핍과도 연결이 되어있어요. 우리의 결핍을 메워줄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면서부터 모든 판타지는 시작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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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리셋하고 싶다면?
만약 여러분에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과거로 돌아가실 건가요?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사람과 재회하거나, 아직까지도 후회되는 어떤 선택을 뒤바꾸기 위해서 말이에요.
과거로 돌아가야겠다는 강한 욕망을 지닌 주인공들은 그 바람을 이루기도 합니다. 소설이나 만화, 혹은 드라마 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죠. ‘회귀물’이란, 작품 속 주인공이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장르입니다. 현재의 지식과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생을 두 번 사는 셈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람은 필연적으로 선택과 후회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잘못된 걸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는 있어도, 아예 그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로 돌아가지는 못하죠. 회귀물은 차라리 삶을 ‘리셋’하고 싶다는 감정이 반영된 결과물입니다. 여기엔 ‘노력으로 바뀌지 않는 삶’, 비관적인 운명론이 만연한 현시대의 인식도 깃들어 있어요.
독자들은 정답을 알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통쾌함을 느낍니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이 주인공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에게 제대로 ‘복수’한다는 점에서, 대리만족을 얻기도 해요. 사회에서 찾기 힘든 정의 구현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회귀물은 답답한 일상을 해소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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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음표와 느낌표로 가득 찬 세계
『브로콜리 펀치』는 2020년 경향신문으로 등단한 이유리 작가의 첫 단편집입니다. 당선작 「빨간 열매」와 2021년 ‘올해의 문제 소설’로 선정된 「치즈 달과 비스코티」를 포함하여, 총 8편이 수록되어 있어요.
“이렇게 골고루 재미있는 소설을 본 이상 품위 있는 표현을 내려놓고 약을 팔아야만 하겠다. 됐으니까 일단 한번 잡숴봐, 이 빨간 열매를. 나 혼자만 이 과즙에 취하고 살 순 없다.”
- 구병모(소설가) -
초자연적 사건과 비일상적 존재가 불쑥 침범하는 이 책은 엄밀히 따지면 판타지 장르는 아니에요.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태어난 환상적 요소들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죠. 죽은 아버지가 나무로 귀환하거나, 복싱 선수의 손이 브로콜리로 변하고, 또 이구아나가 멕시코까지 헤엄치겠다고 말하는 식으로요. 이 모든 이야기 속에는 작가의 다정한 시선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유리 작가는 환상소설을 통해 우리의 결핍이나 아픔 상처를 낯선 방식으로 위로해 줍니다. 이상한 것들이 차고 넘치는 세계, 『브로콜리 펀치』를 덮고 나면 나의 고민은 한결 가벼워져 있을지도 몰라요. 그저 이상한 일이었다고 되뇌며, 묵혀두던 감정 찌꺼기를 털어낼 수 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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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 번쯤 남는 사람이 된다
네 번째 단편인 「손톱 그림자」는 자고 있던 수정에게 5년 전 죽은 전 애인, 용준이 찾아오며 시작됩니다. 용준은 자신이 손톱이라고 말해요. 죽어서 비좁고 캄캄한 곳에 가만히 존재하던 중, 문득 수정 씨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손톱이 사람으로 변한다는 옛날이야기를 떠올렸다고. 그래서 손톱에 들러붙어 보았다가 이렇게 된 것이라 자초지종을 설명하죠.
이를 함께 듣고 있던 석기는 수정과 결혼한 사실을 알리며, 이쯤에서 돌아가달라고 부탁합니다. 용준은 자신 역시 돌아가는 것이 옳은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해요. 하지만 돌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해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결국, 출근하는 석기를 배웅하고 집에는 수정과 용준, 둘만 남게 돼요. 수정은 자신이 죽고 나서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용준에게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잊으면 안 된다고도 생각했는데 잊었다”고 답합니다. 못내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용준은 자신도 언젠가는 수정을 잊게 될 거라고, 이별은 그런 거라고 말해요.
퇴근 후의 석기는 용준이 죽은 장소에 다시 가보자고 제안해요. 그렇게 청주 IC에 도착한 용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오래되어 샛노랗게 변색된 손톱 조각을 하나 남긴 채로요.
수정은 용준이 죽은 후, 혼자 이곳에 와서 결심했던 것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자기 몸에서 무언가 쑤욱, 하고 빠져나가는 걸 느껴요. 아마 용준에 대한 미련이자 그리움, 죄책감이 고루 섞인 그림자 같은 감정이었을 거예요.
잊었다고 사랑하지 않은 것도, 슬퍼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날카로운 기억 조각들이 뭉툭해져야만 계속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에요. 길어지는 손톱처럼 무섭게 자라나는 그리움을 잘라내는 것. 그것이 남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전부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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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연한 이별의 연습
「이구아나와 나」는 헤어진 애인인 재호가 화자와 동거하던 집에 이구아나를 놓고 가며 시작됩니다. 이름도 없는 이구아나는 사실 재호의 전 여자친구가 버리고 간 것이었어요. 그마저도 전 여자친구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로부터 넘겨받은 것이었고요.
화자는 이구아나를 분양한다는 벽보를 붙여보지만, 누구에게도 연락은 오지 않습니다. 차마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먹이를 주고 청소를 해주는 기묘한 동거가 지속돼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화자는 작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으니 수영을 가르쳐달라는 이구아나의 말소리를요. 화자는 그동안 적절히 돌봐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결국 이구아나를 돕기로 합니다. 이구아나는 자신들의 천국이 있다는 멕시코에 가기 위해, 커다란 김장용 고무 대야에서 수영하는 법을 배워요. 그러면서 둘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집니다.
시간은 흘러, 이구아나는 한강을 혼자 가로지를 만큼 수영 실력이 늘게 됩니다. 화자는 이구아나를 응원하면서도 떠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충돌해요.
경포대에 도착한 화자와 이구아나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몇 번이고 이구아나를 붙잡으려 하지만, 괜히 섣부른 말로 이구아나와의 이별을 망치지 않기로 결심해요. 그리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이구아나를 끝까지 쳐다보다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구아나는 남겨진 사랑이나 미련을 상징하는 존재였을지도 몰라요. 화자는 이구아나를 제대로 마주하고, 잘 떠나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 과정에서 외면하고 싶던 감정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천천히 독립할 준비를 하죠. 그저 떠나기에 급급했던 전 연인들과 화자의 다른 점이기도 해요.
우리는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을 말하는 이구아나를 통해 복합적인 감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소설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순 있어도, 우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위로한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어요. 그것이 바로 환상 소설과 판타지 장르가 가진 힘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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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성 안에서 위로를 전하는, 이유리 작가의 세계를 잘 들여다보셨나요?
약 1년의 시간 동안 지구인분들과 함께 여러 문을 열어봤습니다. 개중에는 취향에 맞는 문도, 들어가기 꺼려지는 문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대부분의 문밖레터가 여러분의 결핍을 해소해 주는, 혹은 일상의 피로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창구였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저희만의 지구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탐험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도 계속 삶의 동력을 찾는 여정을 떠나주세요. 그렇다면 언젠가 다채로워진 각자의 지구에서 인사할 수 있을 거예요.
『브로콜리 펀치』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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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레터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지만, 삶이 남기는 미움과 사랑의 궤적만큼은 계속 예술로 이어진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그 위로 속에서 언제나 잘 살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동안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2022.12.10.~2023.10.20.
문밖레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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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 <빅 피쉬>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도 있단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에드워드는 아들에게 허풍 가득한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때로는 진실보다 더 선명히 피어로는 믿음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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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의 물음표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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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마음을 이어주는 이야기들이
여러분에게 도착했기를 바랍니다.
함께 열었던 문밖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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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outdoor_next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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