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이름의 연대
여기 각자의 슬픔을 먹고 자란 한국의 여성 시인들이 있습니다. 책 [여성이라는 예술]은 강성은, 박연준, 이영주, 백은선 시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들을 좌절시켰던, 이들을 일으켜 세웠던, 현재 이들의 예술 세계를 있게 한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여성들의 잠재적 능력, 그 ‘예술성’이 어떻게 조우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내밀하고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만남입니다. 이들의 경험은 연대의 방식으로 독자를 응원하고, 용기를 줍니다. 각자의 언어로, 형상으로, 행동으로 또 ‘투신’으로 ‘여성이라는 전쟁’을 살아내며, ‘여성이라는 예술’을 실현해내고 있지요.
“실비아 플라스를 생각하면 가끔 나는 내가 실비아 플라스 같다. 그녀와 영혼을 함께 쓰고 있는 것처럼 친밀한 느낌이 든다. (중략)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면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 혹은 연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어쩐지 그녀와 내가 포개져 있다고 여긴다.” - 백은선 본문 중
책의 포문을 여는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김영옥 대표의 발문인 <여성이라는 전쟁, 여성이라는 예술>을 인용하여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을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여성 시인들이 자신들의 여성 뮤즈들과 맺는 ‘관계의 전형’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 시인들의 시 속 화자인 ‘나’는 이 세계에서 매 순간 소외당하는 사람입니다. 여성 뮤즈들은 때론 뮤즈로, 하지만 때론 세계에서 추방당한 존재, 즉 유령같은 존재로 이 연행에 ‘나’와 동참합니다. 김혜순 시인은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하면 영감이 아니라 유령이 솟아오른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는 위에 인용된 백은선의 본문 내용처럼, 여성 시인들에게 뮤즈란 단순한 뮤즈의 의미를 넘어서 영혼을 공유한 존재라는 것, 함께 목소리를 내는 존재라는 것을 뜻합니다.
남성 창작자들이 영감을 위해 뮤즈를 필요로하고, 그 영감을 밟고 오르려고 할 때, 여성 창작가들은 여성 뮤즈들과 함께 유령이 됩니다. 그리고 유령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를 언어를 통해 가시화하려고 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성들의 경험과 감응, 작업이 어떻게 탄생하는가, 즉 각자의 슬픔에서 자란 여성 시인 네 명이 자신들의 시어에서 함께 울리고 있는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확인하려는 시도 중 하나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법칙을 초월하는 마음들은 신비롭습니다. 실재하지 않는 마음들로 연결된다는 것. 여성들의 예술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책을 통해 지구인 여러분들에게도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영주 시인이 쓴 본문의 문장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고통을 바라보는 예민한 감수성 만큼은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계는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사랑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좋은 세계를 조금씩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것. 쓰이지 않은 시들이 그러한 사랑을 더욱 크고 넓게 만들어 가리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