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월의 첫 레터를 보내드리네요. 2월은 북반구에서 겨울의 마지막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전히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어쩌면 곧 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시리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겨울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우리의 삶은 늘 다양한 것들을 기다리고, 애정하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사소한 애정들은 평범했던 나날에 생기를 더해주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먼 길을 달려오거나, 좋아하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챙겨보러 영화관을 방문하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찾기 위해 서점을 서성거리던 나날이 으레 그러합니다. 꼭 대상이 스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기어코 불가해한 애정을 쏟아 부으며 살아가곤 합니다.
남들에게는 소위 ‘덕질’로 불릴지도 모르는 이러한 순간들은 사실 모두의 삶에 자리해있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 생기는 힘은, 무의식 속에 심어져 있는 커다란 삶의 동력이니까요.
오늘 문밖레터는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하는 마음, ‘덕질’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레터를 통해, 지구인 여러분들의 사소하고 소중한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절로 행복하게 했던 날들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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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나는 너의 ‘팬’이 되었는가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어떤 특정한 대상을 좋아하게 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팬’이 되는 일은 일반적인 연애 감정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띱니다.
‘그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라는 최종 목표를 수반하는 성애적 사랑과는 달리, ‘팬’으로서의 사랑은 보다 다양한 감정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일컫는 팬심에는 특정 대상을 동경하거나 응원하는 감정, 혹은 연인을 대하듯 정말 사랑하는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단순히 정의할 수 없는 마음이기에, 우리는 어떤 대상을 향해 사랑한다는 말 대신 팬이 되었다고 뭉뚱그려 말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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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렇듯 복잡한 애정을 지닌 이들을 일컫는 ‘팬’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요?
‘팬’은 1889년 야구에서부터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광신자를 뜻하는 ‘Fanatic’의 줄임말이기도 하죠. 종교적으로 열정적인 사람들을 말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그 의미가 점차 특정 스포츠, 뮤지션, 배우 등 수많은 대상으로 확장되며 ‘무언가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보편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팬이 욕구, 욕망을 뜻하는 단어인 (fancy)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는데요, 우리가 누군가의 팬이 될 때 욕구에서 시작하는 건 당연하지만, 스타와 팬과의 관계 또한 강력한 욕구로 이루어져 있음을 심리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팬이 될 때, 특정 대상에 대한 동경심을 느끼게 됩니다. 외형이 아름답다거나, 인간의 평균 신체 능력을 뛰어 넘는다거나, 특정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기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자기 모습에 대한 자기실현 욕구를 충족하게 되죠.
이러한 욕구 충족으로 행복감을 얻는 것은 팬뿐만이 아닙니다. 스타 역시 팬의 존재를 통해 인정의 욕구나 자기실현의 욕구 등 심리적 이익을 얻게 됩니다. 이에 심리학자인 성영신과 우석봉(2001)은 이러한 현상을 ‘심리적 공생’ 관계로 정의하며 스타와 팬의 관계가 일방적인 애정이 오고가는 관계가 아님을 설명했습니다. 얼핏 보면 일방적으로 애정이 오고 가는 관계 같지만, 이러한 설명을 통해 스타와 팬은 수없이 소통을 하며 서로의 욕구를 채워나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닿을 수 없기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랑’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지만, ‘덕질’은 어쩌면 나와 그 대상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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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머리가 시키는 사랑’, 덕질에 대해서
우리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볼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뇌 과학자 정재승 박사에 의하면, 애인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보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봤을 때 뇌가 더욱 활발히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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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랑하는 애인이라 할지라도 뇌의 일부분만 활성화되는 반면에,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보면 뇌의 전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연애가 아니어도, 덕질 그 자체만으로 더욱 풍성한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셈이죠.
또한 건강한 ‘덕질’은 우리의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강원대 간호대 박현주 교수팀은 2020년 한 박람회장을 찾은 대학생 2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덕질 그룹 대학생의 행복감이 눈에 띄게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덕질을 통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건강이 좋아지고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이들의 사연은 일상에서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죠.
이처럼 덕질은 뇌가 시키는 사랑을 넘어, 우리의 몸과 정신을 보다 건강하게 가꿔주는 소중한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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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컬쳐’ 속 여성들의 남다른 사랑 이야기
이희주 작가의 <환상통>은 어디에서도 얘기한 적 없는, ‘아이돌 팬 문화’ 관련 서브 컬쳐에 대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현실감 높은 대사와 장면을 통해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아이돌을 추종하고, 그들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어떠한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지 알 수 있죠.
책 속 주인공인 m과 만옥은 늘 방송국 사옥 앞에서 줄을 서고, 아이돌의 무대를 따라다니고, 병적으로 그들의 사진을 저장하고 정리하는 행위를 합니다. 댓가 없는 애정을 시간과 체력을 통해 지불하며 열정적인 사랑을 지속해나갑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팬’보다는 ‘빠순이’, ‘미친년’등으로 호명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함으로 인해 주변인들에게 질타를 받거나 한심한 눈초리를 받기도 하죠. <환상통>은 이러한 어린 여성 팬덤들에게 무심코 전해지는 폭력성까지 그대로 재현하며 아이돌 팬덤 문화에 대한 생생한 사실 증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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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기록하기
<환상통>의 1부는 N 그룹의 멤버 M을 보기 위해 사인회, 공개방송, 행사 등을 열성적으로 찾아다니는 인물 m이 서술자로 등장합니다.
m의 사랑 방식은 다름 아닌 ‘기록하기’입니다. 자신의 체험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녀는 M의 사진을 병적으로 모으기도 하고, 그를 향한 감정을 문장으로 표현한 단어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m은 자신이 느끼는 사랑에 대해 정의하고자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수많은 연애 소설을 읽으며 충족되지 않는 외로움을 위로받고자 하지만, 연애소설을 읽어나갈수록 m은 더욱 큰 고독을 맛보게 됩니다. 팬이란 존재는 마주침에 의미를 부여해선 안되는, 좋아하는 대상과 어떤 정서적 관계도 맺을 수 없는 특수한 사랑을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더 이상 멤버들을 보고 가슴이 뛰지도, 궁금하지도 않게 된 m은 결국 자신의 사랑이 다 휘발 되어버렸다는 것을 결국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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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휩쓸리기
m이 사랑에 빠진 동시에 그 사랑을 객관화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인물이라면, 2부는 그와 정 반대인 ‘만옥’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만옥’은 자신의 감정과 사랑에 온몸을 내던지고 열렬히 앓는 인물입니다. 어쩌다 M을 보지 못하는 날에는 그가 보이지 않아 괴롭고, 보는 날에는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니 괴로워하며 그와 연애 감정을 가질 수 없는 현실과 환상의 괴리감에서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합니다.
또한 만옥은 M이 먹고 건물 앞에 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빈 그릇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기도 하고, M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선 걸 그룹을 보고는 질투에 사로잡혀 욕설을 하는 등 격양된 사랑에 몰두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에는 그를 소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M이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하죠.
"그날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나는 아주 잠깐의 순간이지만 진실로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너를 가진다는 생각만 해도 괴로웠고 네가 누군가를 쳐다보기만 해도 괴롭다면 네가 사라지는 게 옳았다. 내가 너를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으므로 그게 최선의 답이었다."
"너는 나의 것인데 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너를 사랑하고 있을까. 내가 아닌데도 왜 네 얼굴을 보고 웃는 걸까. 이럴 때면 나는 씨발,이라고 말하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 만옥의 양가 감정을 잘 보여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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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히 사랑하기
m의 사랑이 식는 과정은, 으레 우리가 누군가를 ‘덕질’할 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어쩔 땐 좋아하는 대상을 보기 위해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그의 미소를 보며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랑이 더 이상 나의 원동력이 되지 않아 교체 되거나 사라질 때가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m은 이런 순간에 상실감을 느끼기보단 ‘그저 흘려보내기’를 택하며 그렇게 지난 자신의 애정을 흘려보냅니다.
하지만 ‘만옥’의 사랑은 일반적인 ‘팬심’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뜁니다.
아이돌을 기다리는 그 지루한 순간까지 ‘데이트의 일원’이라 생각할 정도로 M에 대한 희생을 아끼지 않지만, 그가 닿을 수 없는 존재임을 와닿을 때면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녀의 애정은 맹목적이고도 극단적입니다.
만옥은 M을 이성으로서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의 흔적들을 모두 사랑스럽게 여기며 집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짝사랑에 일생을 바쳐 몰두해 있었기에 만옥은 m의 사랑이 끝날 때보다 더욱 처절한 고통을 느끼게 되죠. ‘덕질 대상’을 잃은 상실감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당신은 평생 이 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을 알지 못할 거야.” 책 속의 구절처럼, 어떤 대상을 사랑하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불가해한 기쁨은 오로지 경험해본 자들만 알 수 있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의 m과 만옥은 다소 극단적인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특히 만옥은 자신이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고조된 감정에 매몰되어 있지요.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따라 어쩌면 m처럼 살아갈지도, 언젠가 만옥의 모습으로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분명히 삶을 이어나가게 합니다. 그러나 m과 만옥을 보며, 우리는 한 번씩 사랑의 감정이 혹시 나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덕질은 언제까지나 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인해 저절로 움직여지는 삶은 실로 번거롭고도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일방적인 사랑이 무용해보일 때도 있지만, 이 사랑의 특수성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애정은 우리의 삶을 순탄히 지탱해줄 거라 믿습니다.
<환상통>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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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팬인데 왜요?>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삶을 살아왔으나, 정작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우울감에 빠진 77세 윤순이 할머니.
그러던 중 우연히 아이돌 '라이트'의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고, 이웃인 초등학생 소진의 추천으로 '라이티'(라이트의 팬덤명)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처음에는 손주뻘인 보이 그룹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 해 '입덕부정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실시간 라이브에 참여하기도 하고, 음악방송 1위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도 하면서 '찐팬'으로서의 길을 걸어가게 되죠.
누군가를 좋아함에 있어선 어떤 조건도 필요없음을 알 수 있는 웹툰 <팬인데 왜요>와 함께, 윤순이 할머니가 전해주는 공감과 용기를 얻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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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학 작품을 토대로 10일마다
다채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큐레이션하여 들려드립니다.
더 많은 문밖이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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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outdoor_next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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