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여러분, 반갑습니다. 추운 겨울의 냄새를 담고 있던 레터가 어느새 꽃향기로 가득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요정과 같은 환상 속의 존재들을 믿으시나요? 엘프나 유니콘처럼 아름답거나, 예티나 네시처럼 공포스러운 존재들 말이에요. 터무니없게만 들리는 환상 속 존재들은 오랜 역사에 늘 함께 했습니다. 심지어는 구체적인 목겸담이 떠돌기도 하지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오래 전부터 우리 곁을 떠돌았던 인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아름다운 꼬리를 가진 인어와, 그런 인어를 탐냈던 인간들.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깊은 바다 속에 잠겨있는 문을 함께 열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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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속 인어
인어에 관한 전설은 세계 곳곳에 존재합니다. 사이렌이나 로렐라이, 머메이드, 교인 등 부르는 이름은 모두 다르지만 그 내용은 비슷합니다. 대부분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공을 홀린다고 알려져 있지요. 아름답지만 포악하고, 천진하면서도 잔인하게 묘사되는 인어는 악천후를 불러오는 불길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서양에서의 인어는 주로 신화나 상상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양에서의 인어는 주로 목격담 속에서 발견됩니다. 조선 중기 문신 유몽인의 설화집인 <어우야담>, 조선 후기 문인 이옥의 동식물 관찰기인 <백운필>, 조선 후기 실학자 위백규의 <격물설> 등 많은 문헌에서 인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눈앞에 있는 것을 적어 내려간 듯 생생하지요. 몇몇 학자들은 바다사자나 강치를 보고 착각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조선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인어의 모습은 그것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어우야담>에는 인어의 얼굴이 아름답고 고왔으며 콧마루가 우뚝 솟아 있었고, 귓바퀴가 또렷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거기다 수염은 누렇고, 검은 머리털은 이마까지 드리웠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양의 인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죠? 서양 인어와의 차이점은 이뿐만이 아닌데요. 꼬리 아래로 발바닥이 달려있고,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주름살 무늬가 있었다고 합니다. 무릎을 껴안는 모습 또한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고 해요.
<백운필> 속에도 여인과 어린아이의 인어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등장합니다. 인어들은 주막에서 알몸으로 갇혀 있었으며, 사람 말을 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주인이 인어를 솥에 삶아 요리로 대접하려고 하자, 이를 딱하게 여긴 사내가 바다에 인어를 풀어주었다고 해요. 인어는 세 번을 뒤돌아보며 사내에게 감사를 표했다고도 합니다.
<격물설>의 기록에는, 인어가 자신의 몸을 가리는 것이 꼭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과 같았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조선시대에는 정말로 인어가 존재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지구인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인어가 정말 단 한 번도 실재한 적 없는 존재가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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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급 식자재, 인어?
조선 시대의 기록들은 신기하게도 인어 목격담 뿐만 아니라 인어의 생김새, 쓰임새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어를 취급하는 방식이 꼭 희귀한 사냥감을 대하는 것 같죠. 바다 주변 마을에서는 암컷 인어를 잡아 못에서 키웠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인어를 식자재처럼 바라보는 이야기는 <어우야담> 속에도 나옵니다. 강원도에 갓 부임한 관리 김담령은 마을의 어부가 인어 여섯을 잡았다는 보고를 듣게 됩니다. 둘은 창에 찔려 죽고 넷만 살았는데, 김담령이 나머지를 살려주라고 하자 어부가 무척 아까워했다고 해요. 그 이유는 인어의 기름 때문입니다. 인어 기름은 무척 품질이 좋고 상하지 않아 비싼 값에 팔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썩어 냄새를 풍기는 고래기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고 하지요.
조선 시대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인어는 우리의 환상 속 신비로운 공주가 아닌 그저 빛 좋은 해산물처럼 다뤄지고 있습니다. 사람 손에 쉬이 잡히고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도 많습니다.
어떤가요? 지구인 여러분들이 상상했던 인어의 모습인가요? 그저 바닷속을 헤엄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인어의 모습만 상상해왔더라면 이 이야기가 조금은 충격적일 것 같습니다. 왜인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는데요. 최고급 기름을 위해 인어를 사냥하는 어부들과 똑닮은 이들이 현재에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였던 돌고래 사냥, 지느러미가 잘린 채 버려진 수만 마리의 상어들. ‘트로피 사냥’이라는 대회에서는 매년 희귀하고 신비로운 야생동물들을 사냥합니다. 최근에는 전 세계 단 20마리만 남은 백사자를 집중적으로 사냥하기도 했지요. 오로지 인간의 재미와 과시, 트로피와 상금 때문에 지난 10년간 170만 마리의 야생 동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세계의 많은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옛날에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어가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멸종당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흔하게 보고 있는 동물들도 먼 미래에는 마치 인어처럼 환상 속 동물로 다뤄질 수도 있죠. 아쉽게도 현실은 동화처럼 아름답고 신비롭지만은 않습니다. 인어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고, 바닷속은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그저 멀리서 바라볼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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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나시 마을의 사랑스러운 인어
쇠퇴한 항구 마을 히나시에 노래를 사랑하는 인어가 있습니다. 독특한 작화와 연출로 유명한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영화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속 등장인물 ‘루’이지요.
부모님의 이혼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음악만이 전부인 카이에게 후쿠다와 유호는 밴드 ‘세이렌’을 같이 할 것을 권유합니다. 밴드에 일말의 관심도 없던 카이는 그들이 인어섬에서 몰래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그들을 따라가게 되지요. 그리고 그 섬에서 사랑스러운 인어 소녀 ‘루’를 만나게 됩니다.
히나시 마을은 오래 전부터 인어가 산다는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태양을 무서워하는 인어에게 거대한 그늘 바위가 있는 히나시 마을은 최고의 쉼터였지요. 하지만 인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 탓에 인어는 재앙의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대문에 햇빛과 닮은 하얗게 칠한 성게를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카이의 할이버지도 인어를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우산 장인공인 할아버지는 어릴 때 인어에 의해 엄마를 잃었거든요. 바다 속에서 물질을 하고 있던 엄마를 인어가 물어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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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인 마을 사람들, 인어를 떠나게 하다
바다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다시 카이의 앞에 나타난 ‘루’는 소문처럼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잡아 먹거나 위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음악이 나오면 꼬리 대신 두 다리로 신나게 춤을 추곤 했습니다. 세이렌은 그런 루의 존재를 비밀로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기로 합니다.
하지만 루의 존재는 곧 들통나고 맙니다. 등불축제에서 춤추는 루의 모습을 몰래 찍은 누군가가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기 때문이에요. 히나시 마을의 인어는 다시 주목받게 됩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에미나 수산의 사장인 유호의 할아버지는 인어랜드를 재개장하고, 히나시 마을을 부흥을 위해 루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을의 어른들은 대치하게 됩니다. 인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른들과 인어를 오해하고 무서워해 마을 밖으로 쫓아내자는 어른들의 싸움이지요. 모두 인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우기에 급급하지요. 인어가 햇빛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루를 가둬놓고 말이에요. 그들의 이기심에 결국 바다는 분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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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살아가는 마음
인간의 이기심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피해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환경오염으로 발생하는 자연재해들을 자연이 막아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영화 속에서도 위기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인어들입니다. 사실 인어는 사람들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인어에게 물리면, 물린 사람도 인어가 될 뿐이지요.
루는 물에 잠긴 유기견 보호소에 들어가 철장 안에 갇혀 죽어가는 유기견들을 모두 물어 견어로 만들어 줍니다. 사람에게 버려져 좁은 철장 속에 갇혀 있던 견어들은 넓은 바다를 헤엄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견어들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인어들과 함께 구하지요.
사실 영화 속 카이 할아버지의 엄마는 죽지 않았습니다. 물질을 하다 바다 깊이 가라앉은 물건에 끼여 죽을 위기에 처한 엄마를, 인어가 물어 살려준 것이었지요.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그대로의 인어가 된 엄마를 만나고, 자신도 인어가 되어 함께 어디론가 떠나게 됩니다.
영화 속 히나시 마을 사람들은 인어 덕분에 목숨을 구했지만, 인어는 더 이상 그곳에서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이기심은 상처를 낳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도 인어들을 내쫓는 하얗게 칠한 성게를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혹시 여러분의 목에 하얗게 칠한 성게가 걸려 있지는 않은가요? 우리는 우리의 이기심이 너무 뾰족해지지는 않았는지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레터의 첫 번째 문에 등장했던 강치를 기억하시나요? 조선시대 인어 목격담을 본 학자들은 조선의 사람들이 강치를 보고 인어로 착각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죠. 강치는 독도를 비롯한 동해에 2만 마리 이상이 서식하고 있던 한국에 고유종입니다. 강치의 가죽과 뼈를 위해 1만 5천마리 이상을 남획하고 포획하여 강치는 결국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그들도 더 이상 동해 연안에서 살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정말로 조선 시대 사람들이 강치를 보고 인어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어와 같은 환상 존재는 인간의 욕망에서부터 태어나는데, 실제로 강치 기름은 등불을 밝히는데 사용되었거든요. 그 욕망이 어떤 모양인지에 따라 인어는 바다를 누비는 아름다운 존재일수도 있고, 단지 값비싼 기름만을 위한 사냥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욕망이 이기심으로 발현되지 않도록 신중히 보살펴야 합니다. 보다 아름다운 욕망으로, 더불어 사는 환상적인 세계가 우리에게 찾아오기를 바라며 오늘의 레터를 마치겠습니다.
문밖레터는 4월 20일을 마지막으로 시즌 0을 마무리합니다. 재정비 후, 5월 20일에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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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델 토로, <셰이프 오브 워터>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말을 못 하는 언어장애인이다.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에 갇힌 채 들어온다. 엘라이자는 신비로운 그에게 이끌려 조금씩 다가간다. 실험실의 보안책임자는 괴생명체를 해부하여 우주 개발에 이용하려 한다. 이에 엘라이자는 그를 탈출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경계 없는 사랑을 위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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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의 물음표
여러분은 인어가 실존한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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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학 작품을 토대로 10일마다
다채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큐레이션하여 들려드립니다.
더 많은 문밖이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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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outdoor_next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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