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기억은 삶에서 중요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소중할수록 곁에 붙잡아 두기 어려운 경우가 있죠. 기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의학적으로 치매라고 불리는 이 질병은 이미 전 세계적인 화두예요.
암보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대비해야 할까요?
또 가까운 사람이 기억을 잃는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때는 애틋했던 것들에게 경의를 보내며
오늘의 문을 함께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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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과 치매의 상관관계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치매 극복은 모두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 수는 2021년 기준 약 88만 명에 달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5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치매를 앓고 있어요.
학계에서는 인구 고령화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요인 또한 치매의 주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실제로 치매, 우울증이 대기오염과 관련 있다는 연구는 전부터 계속되어왔어요. 하버드 TH Chan 공중보건대학 측은, ‘미세먼지 대기 오염물질(PM2.5)에 노출되면 치매 발병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해 주장에 신빙성을 더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지난 3월 16일, 비슷한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연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조재림·김창수 교수와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노영 교수 공동 연구팀이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이 대뇌피질 두께를 얇게 만들어 알츠하이머 치매 위험도를 높인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치매 인구가 2050년 기준, 1억 52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치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다 같이 예방법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치매는 더 이상 윗세대만을 겨냥한 질병이 아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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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정류장
독일에는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이 있습니다. 물론 버스 노선에도 배제되어 있는데요. 이런 정류장을 만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일명 가짜 정류장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사실 치매 환자의 배회를 막기 위해 설치된 시설입니다. 독일 뒤셀도르프 벤라트 지구의 ‘벤라트 시니어 센터’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었어요. 대부분의 치매 환자들은 ‘가족을 만나러 가고 싶다’거나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배회하게 됩니다. 이때, 주로 찾아가는 곳이 버스 정류장이에요. 하지만 치매 환자들은 5분 정도 지나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란스러워하다가 그대로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이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가짜 정류장은 치매 환자의 심신을 차분하게 달래주는 역할을 합니다. 불안하고 급박했던 기분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천천히 사그라지도록요. 그 후에는, 버스가 오지 않으니 다시 돌아가자는 요양사의 안내에 따라 안전하게 요양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현재는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에 이어 약 600만 명의 치매 인구가 있는 일본에서도 해당 시설을 만들어 사용 중입니다. 독일 알츠하이머 학회는 가짜 정류장에 앉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환자들이 안정을 찾는 과정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어쩌면 치매 환자에게는 논리적인 접근보단 이해와 공감으로 다가가는 게 더 우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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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쇼 마을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가족 간병이나 요양원 입소 정도로만 관리되는 것이 현실이에요. 이러한 가운데 네덜란드의 치매 정책 사례가 꾸준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CNN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호그벡 마을’은 2009년, 치매 요양병원 간호사였던 이본 반 아메롱겐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의 외곽에 위치해 있죠. “치매 노인도 보통 사람처럼 평범한 삶을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라는 비전을 가진 곳입니다. 이 마을의 모든 시설과 직원은 오직 치매 환자들만을 위해 마련되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트루먼쇼>를 연상시킨다고도 해요.
호그벡 마을의 23개 집은 환자들이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면밀히 조사한 뒤, 그들의 취향과 개성에 맞게 지어졌습니다. 동거인 또한 성향 및 생활 양식이 비슷한 사람끼리 정해졌고요. 스트레스가 병의 호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치매 노인은 그저 환자로 여겨지는 것이 아닌, 행복을 즐길 줄 아는 또 하나의 주체로 통합니다. 마을에 조성된 35개의 동호회는 그들이 자유로운 여가를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이러한 환경은 다른 방식으로 다시 그들의 일상을 구축해나가게 합니다.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더라도 삶은 계속 이어져 나가야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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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책의 말을 빌리자면, 이 레스토랑에서는 종종 주문하지 않은 요리가 식탁 위로 올라옵니다. 주문을 받는 직원들이 모두 치매나 인지 장애를 앓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분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오히려 함께 즐기세요.”라는 것이 레스토랑의 콘셉트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일본 방송국 오구니 시로 PD의 기획에서 출발하였습니다. 2017년 6월 3일과 4일 이틀 동안 도쿄 시내의 작은 레스토랑을 빌려서 임시로 오픈했죠. 영업시간도 11시부터 15시까지 단 네 시간, 메뉴도 세 종류가 전부였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해당 프로젝트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습니다. 60퍼센트 이상의 테이블에서 착오가 있었지만, 90퍼센트 이상의 손님이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응답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떤 요리가 나올까 기대하고, 틀린 메뉴가 나오면 손님들끼리 알아서 메뉴를 바꾸어 먹었다고 해요. 서로 간의 소통이 가벼운 실수를 수용하는 마음으로 번져간 것입니다.
오늘은 이 특별한 프로젝트의 여정을 담은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럼 같이 레스토랑을 기획하며 생긴 에피소드의 장을 넘겨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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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지
오구니 시로 PD는 청년성 치매를 앓고 있는 예순두 살 후미히코 씨를 만났습니다. 체력도 되고 의욕도 넘치는데, 정작 일할 곳은 없던 그에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해볼 생각이 있냐고 제안했죠. 가족들은 물론 후미히코 씨 본인 또한 크게 기뻐하며 프로그램에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옛날에는 신주쿠 유명한 오코노미야키 집에서 일했었지.”를 늘 자랑삼아 말하던 후미히코 씨의 실력은 오픈 당일 더 빛을 발했어요. 요식업 경험자였던 덕분에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정중했고, 무엇보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후미히코 씨는 넘치는 의욕만큼이나 실수가 잦았는데요. 구별이 잘 안 가는 차가운 음료용 텀블러와 뜨거운 커피용 텀블러를 대충 골라서 사용한다거나, 메뉴와 테이블 번호를 자꾸 틀리는 등 모든 면에서 실수가 잇따랐습니다. 그렇지만 손님들은 그의 실수를 비난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후미히코 씨는, “여기 손님들은 정말 착하네. 실수해도 전혀 화를 내지 않으니 말이야. 이런 곳에서 일한다는 건 정말 최고의 행운이야.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라고 말하며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치매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일에 대한 만족감을, 후미히코 씨가 여느 때보다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펼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다른 노인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이 닿기를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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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족의 이야기
레스토랑에는 때때로 정신적, 혹은 신체적 질병을 앓고 있는 손님들도 방문했습니다. 기구치 씨 또한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과 동행했어요. 사실 기구치 씨는 아들에게 외식을 제안했을 때,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물한 살이지만, 네다섯 살 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진 그를 주변에서 따가운 눈초리로 보았기 때문이에요. 기구치 씨의 아들은 결국 사람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고, 밖에 나가는 것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런 아들이 식당에 가자는 말에 선뜻 수락한 것은 의외의 일이었죠. 메뉴가 틀리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닫혀있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어떤 서투름은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도 하거든요.
아들은 오랜만에 본래의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레스토랑에서 아들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은 없었습니다. 다른 테이블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로 눈치를 주는 사람 하나 없었어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식당에 찾아오는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것입니다.
분명 이곳이 기구치 씨의 아들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외식을 싫어하는 것과 사람을 꺼리는 것은 변함없었다고 해요. 한 가지 일이 모든 것을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니까요. 그럼에도 기구치 씨는 “실수를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장소가 있다.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있다. 그 지점에서 큰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고 말합니다. 나의 실수를 받아주는 장소가 있다는 것만큼 마음 편해지는 일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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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실수를 가볍게 수용하고 즐기는 요리점은 늙고 병드는 것이 더 이상 불행하거나 외롭지만은 않도록 만들었어요. 작은 실수에도 보복하려 들거나,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지는 현대사회가 보고 반성해야 할 대목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여유는 얼마만큼의 크기인가요? 타인을 향해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로 서로를 다독이며, 이번 레터를 마치겠습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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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레터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잠시 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5월 20일에 새로워진 문밖레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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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 료타, <조금씩, 천천히 안녕>
“치매는 영어로 A Long Goodbye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오랜 기간 천천히 기억을 잃는 과정 때문이란다.”
치매를 앓는 가족이 있었던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담긴 영화. 눈물도 있고 웃음도 있는 작별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보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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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의 물음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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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학 작품을 토대로 10일마다
다채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큐레이션하여 들려드립니다.
더 많은 문밖이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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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outdoor_next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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