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라고 불리는 5월은 놀이공원과 동물원의 방문객들이 제일 늘어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여러 놀이공원에서는 ‘환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홍보문구를 전하고 있습니다. 손을 잡고 츄러스를 먹는 가족들과 귀여운 머리띠를 쓴 사람들의 얼굴은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놀이공원’이라는 말처럼 그 자체로 모두에게 행복한 공간이라면 좋겠지만 어떤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으로부터 만들어지기도 해요. 유리를 두드리는 관람객의 눈을 피해 숨어버리는 야생동물과 얕고 미지근한 물에서 수영하는 북극곰 그리고 펭귄은 환상과 행복이라는 단어 속에서 외면됩니다.
오늘은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이 괴리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모두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의 문을 활짝 열어주세요!
첫 번째 문 🚪
🎪열악한 환경, 동물원의 안전사고
지난 3월,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도심을 활보하다가 붙잡혀 화제가 되었습니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모든 야생동물이 세로처럼 다치지 않고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에요. 2018년에는 대전 오월드에서 퓨마 ‘뽀롱이’가 잠금장치를 잠그지 않은 직원의 실수로 탈출했다가 결국 사살되었습니다. 제주 동물원에서는 열대 지방의 포유류인 호저 두 마리가 탈출해 그 중 한 마리가 아사하기도 했습니다.
동물원에서는 탈출 외에도 다양한 사고가 발생합니다. 사고는 대체로 열악한 동물원의 환경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동물원 안전사고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600건이 발생했어요. ‘동물원 보유 동물 서식 환경 현황조사’의 결과를 보면 환경부가 정한 포유류 공간 기준을 충족한 동물원은 86곳 중 34곳이 전부였습니다. 또한 2016년부터 2021년 7월까지 동물원 109곳에서 폐사한 멸종위기 동물 1,854마리는 자연사가 아닌 질병 또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서울시설공단은 얼룩말 ‘세로’를 위해 어린이대공원에 들어올 여자친구 ‘코코’를 공개 했습니다. ‘세로’가 새 친구를 사귀고 안정을 취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또 다른 생명을 열악한 시설에 가두어 평생 억압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공간인 만큼 우리가 책임져야 할 생명들을 위해, 더 나은 방안이 계속해서 논의되기를 바랍니다.
🐭표정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동물들의 표정은 우리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동물의 감정은 우리에게 전해지기가 힘들지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서는 생쥐의 얼굴에도 다양한 감정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컴퓨터 기계 시각을 사용해 생쥐의 얼굴 표정에 나타난 즐거움과 혐오감, 메스꺼움, 고통과 두려움을 구별한 것입니다. 연구를 이끈 나딘 고골라(Nadine Gogolla) 박사는 “목이 말라서 설탕 용액을 핥은 쥐는 보통의 생쥐보다 얼굴에 더 즐거운 표정을 나타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 반해 아주 짠 용액을 맛본 쥐는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고 해요.
또한 동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원숭이, 돌고래, 늑대 등 여러 종의 동물이 공포 등의 1차적 감정뿐 아니라 애도와 수치심 등의 2차적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동물들은 복잡하고 섬세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을 가진 동물들을 통제하거나 전시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가혹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 동물원을 아시나요?
동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전시하고 관람한 역사도 있습니다. 유색인종이 덜 진화되었다고 믿은 19세기와 20세기의 백인들은 유럽과 미국에 ‘인간 동물원’을 만들어냈습니다. 인간 전시 역사는 불과 65년 전까지 이어져왔다고 해요.
1904년, 세인트루이스 만국박람회에서는 콩고의 피그미족 출신의 오타 벵가와 흑인 소년들이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박람회는 겨울까지 이어졌는데 이들에겐 추위를 이길 옷조차 제공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 후 1906년, 오타 벵가는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에 전시 되었어요. 1910년, 동물원에서 풀려난 오타 벵가는 평범한 삶에 적응해보려 했지만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인간 동물원은 흑인을 원숭이라고 여겼던 과거 백인들의 무지에서 벌어진 비극이에요. 또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한다는 제국주의 사상의 한계를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현 시점에서 인간 동물원은 누구나 기이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과 같이 감정과 마음을 가진 생명을 통제하고 전시하는 동물원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우리의 재미를 위하여 또 다른 존재의 착취를 반복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문 🚪
🦄미확인 동물들의 안식처
캘리포니아 ‘크립토주’에는 전설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믿었던 동물들이 모여있습니다. 유니콘이나 머리가 세 개 달린 용, 반인반수 등 여러 종의 생물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대쉬 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크립토주(Cryptozoo)>는 판타지 세계관 속에서 동물원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집니다.
영화 속 미확인 동물들은 겉모습만큼이나 희귀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무분별하게 포획당해 암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거래되거나 전쟁에 이용당하기도 하지요. 크립토주는 이러한 미확인 동물들의 안전한 생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미확인 동물들을 착취로부터 보호하고 서로 다른 생김새의 이들이 공존하는 공간이지요.
⛓️보호와 전시 사이
수의사이자 크립토주의 사육사인 ‘로런’은 미확인 동물들을 크립토주로 데려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미군들과 대립합니다. 미군들보다 먼저 미확인 동물을 포획하여 보호해야하기 때문이지요. ‘로런’은 미확인 동물들이 숨지 않고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유토피아를 크립토주를 통해 실현하려 합니다. 크립토주에서 사람들이 미확인 동물들을 자주 접하고 그들에게 익숙해지면, 언젠가 동물원 밖에서도 미확인 동물들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공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하지만 크립토주의 실상은 보호구역이라기 보단 테마파크에 가까웠습니다. 크립토주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수익이 필요합니다. ‘로런’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미확인 동물들을 상품화하고 사람들이 관광하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타자화된 미확인 동물들은 크립토주 안에서 철저하게 상품화됩니다. 매대에는 현재까지 밝혀진 미확인 동물들의 인형이 팔리고 있으며, 그들의 일상은 관광객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철장 안에 전시됩니다. 도깨비 불처럼 빛을 내는 ‘루스 말라’는 유리창에 갇혀 동물쇼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미확인 동물들은 크립토주 안에서 안전을 보장 받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켜보는 크립토주 안에서만 안전을 보장받는 생활은 거대한 우리 안에 갇힌 것과 다름없습니다. 미확인 동물들에게 선택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살거나, 사람들의 통제 하에 전시되는 것이 전부입니다.
‘로런’이 미확인 동물들을 구출하는 것은 선한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그녀가 동물을 잡기 위해 사용하는 저항이 불가능한 포획 도구는 공포를 야기합니다. ‘로런’이 미확인 동물들을 구하려는 이유 또한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 아닌, 희귀한 종족으로서의 보존 가치 때문이지요. ‘로런’의 모습은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인간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또한 크립토주라는 공간이 가지는 이중적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듭니다.
✨모든 생명의 자유를 위해
크립토주의 여러 문제는 현실의 동물원을 연상시킵니다. 더 나아가 미확인 동물들의 다양한 외형은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소수자의 문제까지 비추고 있어요. ‘피비’와 ‘플리니’는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과 다른 신체는 그들을 미확인 동물, 즉 타자로 분류시킵니다. 타자화된 미확인 동물들은 공감의 영역 밖으로 밀려납니다. 그들을 억지로 ‘나’의 영역으로 끌고 와 ‘나’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면 결코 그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미군들의 폭격으로 크립토주는 무너집니다. 인간 ‘로런’의 도움을 받아 삶을 이어나가던 미확인 동물들은 그들만의 연대를 통해 인간이 통제하는 세상 ‘크립토주’로부터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 사람들을 피해 숨어 살겠지만 그들만의 생태계를 꾸려가겠지요. 크립토주의 미확인 동물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생명을 지켜주는 존재가 아닌 자유였습니다. ‘로런’의 행동이 그들에게 폭력이 되었던 이유는 사람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보호와 억압의 구분은 이토록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미확인 동물’이 다양한 형태의 삶을 존중받고 자유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의 레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