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여러분들이 ‘어른이 되었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나 자신이 어른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그리 대단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토록 무서웠던 치과 치료가 무감해지는 순간이 될 수도 있고, 편식하던 음식의 가짓수가 줄었을 때일 수도 있고, 나를 비롯한 타인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서 느낄 수도 있죠.
이처럼 ‘어른이 되는 일’은 성년의 나이가 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찾아오곤 합니다. 인간의 삶은 한순간에 레벨 업하듯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늘 상승이나 전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번 레터는 세상에서 가장 추상적이고도 어려운 단어, ‘어른’과 ‘성장’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서 다시금 되짚어 봐야 할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어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걸음을 함께 내디뎌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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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형 인간’ 만드는 과잉보호
인간은 3~4세가 되면 언어 발달이 향상됨과 동시에 부모에게서 분리되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려는 행동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동은 무언가를 성취해 내는 기쁨, 독립성, 자신감 등을 학습하며 상황에 맞춰 행동이나 정서를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게 되죠. 이것을 우리는 주도성, 자기 결정권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해당 단계에서 부모가 지나치게 간섭하고 도와준다면 아이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고, 충분한 자존감을 형성하지 못한 채 타인에 대한 의존성만 높아진다고 해요. 또한 성인이 된 후에도 업무를 적극적으로 해내지 못하거나 의견을 내기 어려워하는 등 회피 성향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식물을 키울 때, 물을 주지 않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바로 물을 많이 주는 ‘과습’입니다. 아무리 필수적인 관심과 사랑이라 할지라도, 정도가 지나치면 생애주기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습득할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죠. 무엇보다 아이를 영구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지도가 아닌 아이 스스로의 강인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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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 향하는 끝나지 않는 마라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이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직업을 탐색해야 할 시기인 ‘성년 이행기’가 5년이나 늦춰졌다고 해요. 유민상 (한국 청소년 정책 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년 이행기’가 길어진 배경으로 청년들의 취업과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진 현실을 꼽았습니다. ‘가장 좋을 때니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몇몇 기성세대의 의견과는 달리, 갈수록 과열되는 취업 시장으로 인해 자신을 성인으로 인지하는 시기는 점차 늦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척박한 현실은 청년층에게 과도한 부담감을 실어줍니다. 경제적 독립 등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들기도 해요. 위와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서 우울감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청년층도 많아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영구적 성숙을 이루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갓난아이에게도, 막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도, 백발의 노인에게도 해당하는 얘기이지요. 그러나 오히려 완전해지기 어렵기에 ‘성장’이 지니는 의미가 더욱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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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으로 어른 되기, 보호 종료 아동의 현실
2021년, 아동 복지 시설에서 생활하다 만 18세가 되면 자립해야 했던 ‘자립 준비 청년(보호 종료 아동)’의 퇴소 나이가 만 24세로 늘어났습니다. 이는 의지가 아닌 의무로 인해 사회에 던져져야 하는 보호 아동의 현실을 고려하고, 이들의 경제적, 사회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이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 해당 법안에 대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동과 성인을 데리고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르며, 뚜렷한 목표 의식 없이 보호 시설에 머무르는 것은 의존적인 성향만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제대로 된 경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만 18세 이후 지급되는 경제 자립 수당을 단번에 써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 같은 부작용이 계속 야기됨에도 불구하고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의 책임은 보호 시설이 다 떠맡게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호 아동들이 더욱 행복하고 안정적인 미래를 꾸리기 위해선, 표면적인 제도 개선이 아닌 취업 프로그램, 자립 지원 특강 등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명의 미성년이 성년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진로에 대한 지도뿐만 아니라 세금을 내는 법, 보험에 가입하는 법 등의 교육도 병행되어야 해요. 살아가는 데는 상상보다 훨씬 구체적인 생활 지식이 필요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차차 어른이 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안전한 길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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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금쪽이를 소개합니다. 사랑스러운 사고뭉치 스티븐
이번 레터에서는 ‘미성년’과 ‘성장’에 관한 영화, 자비에 돌란의 <마미>를 다뤄보려 합니다.
소년 ‘스티븐’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심화된 ADHD(주의력 결핍 행동 과잉 장애)로 인해 절도, 폭행, 방화 등 가벼운 일탈을 넘어선 사고를 칩니다. 겉보기엔 마냥 문제아 같아 보이지만, 누구보다 엄마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며 엄마의 사랑을 잃기 싫어하는 소년이기도 하죠. 반면 엄마 '디안’은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었으나 특유의 유쾌함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바쁘게 생계를 이어가던 와중, 하나뿐인 아들 스티븐이 보호 시설에서 쫓겨나자 갑작스러운 홈스쿨링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들의 동거에는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스티븐은 계속해서 사고를 치고, 디안과 의견 다툼을 하는 날이면 디안의 목을 조르거나 욕을 하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거듭해서 저지릅니다. 남편이 남기고 간 빚 때문에 청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디안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스티븐을 돌보는 일은 역부족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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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결핍이 만나 만들어낸 희망
스티븐은 처음부터 카일라에게 큰 호감을 느꼈기에 곧잘 그녀의 말을 잘 따릅니다. 아들의 죽음 이후로 말을 더듬는 언어 장애를 얻게 된 그녀 역시, 디안과 스티븐 모자를 돌보며 느끼는 연대감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이들이 서로를 보듬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행동 장애가 있는 스티븐은 사회와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하고, 디안은 빚과 아들의 행동으로 인한 문제들을 극복해야 하며, 카일라는 아들의 죽음과 언어 장애를 이겨내야 하죠. 그렇게 셋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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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의 인물들은 1:1 비율의 정사각형 화면에 갇혀있습니다. 이는 갑갑하고 절망적인 현실에 가로막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제삼자에게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받는 이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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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랑으로 인해 서로를 구원하고, 잠시나마 이 셋이 자유를 느꼈을 때, 화면의 비율은 가로로 확장됩니다. 마치 그들이 그토록 바랐던 희망의 문이 열렸음을 암시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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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절망, 그럼에도 우리가 가장 잘 하는 건 사랑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던 와중, 스티븐이 과거 저지른 방화의 피해자 측에서 감당하기 힘든 배상금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잠시 호전됐던 했던 둘의 모자 관계는 다시 악화되고,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디안에게 스티븐은 이런 말을 합니다.
“언젠가는 엄마도 날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아. 난 늘 엄마를 위해 살게.”
절대로 끊어지지 않기에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랑을 우리는 ‘애증’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이를 한 단어로 일단락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맹목적인 감정이지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사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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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구원은 별개일 테지만
스티븐은 마트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디안은 자신의 사랑만으로는 스티븐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킵니다. 스티븐이 입원한 후로, 남겨진 디안에겐 적막함과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스티븐은 그토록 자신이 혐오하던 시설에 살게 되고, 의지할 수 있던 친구 카일라는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죠.
우리 모두에게는 어딘가 미성년에 머물러 있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자식이라는 무거운 존재를 책임지게 된 디안과 카일라 또한 처음 겪는 일들에는 무방비하듯 말이에요. 우리는 살면서 과거에 한 선택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를 후회한다는 것은, 지금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자신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해요. 후회 또한 성장이 동반될 때 일어나는 일이죠. 어쩌면 당장은 스티븐이 디안을 원망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 스티븐도 디안의 선택을 존중하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미성숙함을 책망하는 것은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때의 나 또한 놓인 상황에 최선을 다해 뛰어들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아온 카일라에게 디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다 보면 별일 다 겪고 각자 자기 문제를 해결하며 살면 돼. 난 내 소임을 다했고 그랬기에 나에겐 희망이 있어. 그래서 나는 승자야.”
서투른 부분을 탓하기보다는 디안의 대사처럼 그때그때 주어지는 현재의 소임에 충실해 보세요. 그러면서 부지런히 자라나고 있을 나를 계속해서 궁금해하고, 밀어주고, 일으켜 주세요.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나를 알아가면서 생기는 내면의 잔잔한 지구력이니까요. 그리고 손을 내미세요. 사랑과 구원은 별개일 테지만, 영화처럼 사람 간의 마찰은 우리를 몇 뼘이고 더 자라나게 합니다. 아직 다 성장하지 못한 여러분의 어린 자아들을 다정히 쓰다듬어 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레터 마치겠습니다.
<마미>가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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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스물세 번째 문에서는 ‘문밖의 빵’이라는 주제로
영화 <위로를 주는 빵집, 오렌지 베이커리>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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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케이, <디태치먼트>
과거의 트라우마 탓에 기간제 교사로 살아가는 ‘헨리’. 큰 의욕 없이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문제아들이 모여있는 교실을 맡게 된다.
교사와 학생 간의 무관심이 일상이었던 학교는 엄격하지만 다정한 ‘헨리’의 교육을 통해 점차 변화하게 되고, 굳게 닫혀있던 아이들의 마음도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한다.
그 어떤 미화도, 희망도 없지만, 현실 속에서 피어난 애정과 믿음을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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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의 물음표
지구인 여러분이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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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전시 콘텐츠를 위주로 큐레이션 합니다.
10일마다 삶과 마음을 이어주는 이야기들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더 많은 문밖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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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outdoor_next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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