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를 맞이했다는 것이 슬슬 실감 나기 시작하는 1월 중순입니다. 지구인 여러분, 올해도 새 일기장이나 다이어리를 장만하셨나요? 새해가 시작되면 때 묻지 않은 희망들을 빳빳한 새 종이 위에 옮겨 적고 싶어져요. 사람마다 일기를 쓰는 방식은 고유하지만 우리는 어딘가에 자신을 기록해두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어제의 기분은 너무 쉽게 휘발되어 버리고, 인간의 기억력은 기대보다 나약해요. 때문에 우리는 매일 앞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요. 그럴 때 일기가 모든 시간의 나에게 연결되도록 도와줄 수 있어요. 애썼던 과거의 나를 기억해줄 수도 있고, 지금의 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해주며, 때로는 미래의 나를 미리 다독이는 방법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이번 문밖레터에서는 사적인 기록 ‘일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문지기와 함께 나를 기록으로 남기는 법에 대해 고민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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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연결되는 일기
2022년 네이버 블로그는 매주 블로그에 일기를 업로드하는 ‘주간 일기 챌린지’ 시행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어요. 네이버는 '2022 블로그 리포트'를 통해 지난 2022.12.13일 한 해 동안 블로그 서비스에 축적된 데이터들을 공개했습니다. 리포트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약 200만 개 블로그가 새롭게 생성됐으며, 전체 블로그 수는 총 3200만 개로 집계됐다고 해요. 1020 세대 사용자는 전년 대비 17% 증가했고, 3040과 5060 세대도 평균 10%가량 늘었다고 합니다. 이 통계는 젊은 세대 유입이 상당수 늘어나는 가운데, 기존 블로그 이용 세대의 비중도 꾸준히 증가함을 보여주고 있어요.
주간 일기 챌린지의 흥행은 일기가 기록의 의미를 넘어서 소통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블로그 일기를 통해 일상을 기록하면 너무 사소하거나, 너무 무거워서 직접 전하기 꺼려졌던 소식을 간접적으로 나눌 수 있어요. 또한, 친구의 일기에 등장하는 나를 보는 것도 공유하는 일기의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나에게로 향하는 친구의 시선을 가늠해보고, 함께 했던 순간을 다른 앵글에서 보는 일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자세한 일상 소통의 역할을 블로그가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소수성’입니다. 간편한 소통이 가능한 인스타그램을 자주 사용하게 되지만, 지나치게 공개된 장소에서 오는 피로감은 인스타그램의 큰 단점입니다. 때문에 공개 범위 설정이 가능한 블로그가 일기 공유에 적합한 플랫폼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공유하는 일기를 통해 소수의 친구와 깊은 친밀감을 주고받는 기쁨을 누리고, 누군가 읽어줌으로써 일기를 쓰고 싶게 만드는 동력을 얻는 것도 일기쓰기의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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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오롯한 대화, 감정일기
일기가 치유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일기를 통해 타인과 교감하고 연결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일기는 나 자신과의 온전한 대화를 가능케 해요. 나만 알고 있는, 나만 알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저 간직할 때는 혼잣말이 되지만 일기를 통해 풀어낸다면 나 자신과의 대화가 됩니다. 그리고 나와의 솔직한 대화는 건강에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요.
1980년 진행된 미국 텍사스대 제임스 페니베이커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울·절망·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일기에 적는 것이 건강 호전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스트레스 해소뿐만이 아니라 신체 면역 기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며, 천식과 관절염이 완화되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세세하게 묘사하여 글을 쓰는 것이에요. 내가 무엇 때문에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지, 정확히 어떤 형태의 감정인지 세세히 파악하고 그것을 나 자신이 수용하는 것이 중요해요.
전우영 심리학자의 강연에 따르면, 일기가 치유의 기능을 가지는 이유는 완결된 기억일수록 쉽게 잊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우리가 드라마를 볼 때 이야기가 애매하게 끊기면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 다음 화가 궁금해지는 것처럼, 기억도 동일합니다. 미완결된 기억은 잊히지 못하고 내 머릿속을 부유하다가 불현듯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나에게 솔직해지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요.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연습보다 감정을 숨기는 연습을 더 부지런히 해왔으니까요. 감정 일기를 쓰는 것이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거예요. 그러나 부정적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은 나를 위한 중요한 일이에요. 내일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도 모르죠. 그래도 오늘은 오늘의 기분과 감정을 계산 없이 적어 내려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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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
<일기시대>는 시인 문보영의 일기를 엮은 에세이입니다. 시인이 되어오며, 시인의 시선으로 살아오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일기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문보영 시인은 현재 손으로 쓴 일기를 독자에게 우편으로 발송하는 ‘일기 딜리버리’를 운영하고 있어요. 일기를 발송하기 위해 온 가족이 거실에 원고를 펼쳐놓고 포장하는 ‘포장의 달인’ 에피소드가 책에 수록되어 있기도 하지요.
<일기시대>를 읽으면 시인이 얼마나 일기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책의 뒷면에는 “일기가 창작의 근간이 된다는 말은 흔하지만 사실 일기가 시나 소설이 되지 않아도 좋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어요. 그렇습니다. 일기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일기는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나를 기록하려는 마음,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려는 문장은 귀하고 근사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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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일기를 옆모습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일기라는 건 서로의 옆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나는 내 옆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친구의 일기 속에선 내 옆모습을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입체적으로 보면 사람을 미워할 수 없게 됩니다.”라고 답변하며 일기의 소통적 측면에 대해 새롭게 조명했어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가까워져요. 그러나, 오직 대화로만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대화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도록 도와주지만 때로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감추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누군가의 일기를 본다는 것은 대화보다 경청에 가까워요. 마주 보고 앉는 것보다 나란히 앉는 것에 가깝지요. 나란히 앉아 고개를 돌리면 그제야 정면으로 마주할 때는 볼 수 없었던 상대의 입체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어요.
책과 인터뷰에서 일기의 소통적 측면을 강조한 만큼 책에는 시인의 지인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지인들은 실명이 그대로 등장하기도, 그저 친구라는 말로 불리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직접 명명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방에 자주 놀러 오는 인력거, 학창 시절 전교 1등이었던 처천재, 돼지 인형 말씹러 등. 자신만의 시선이 담긴 이름으로 지인을 소개합니다. 심지어 괴로웠던 기억을 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에피소드에서는 자신을 ‘황구’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도 해요. 한 번쯤 일기 안에서만큼은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름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나의 옆모습을 내 눈앞에 펼쳐 보여 줄지도 몰라요.
문보영 시인의 인터뷰를 읽어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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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시대
<일기시대>는 문보영 시인이 살아가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시인만의 유쾌하고도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를 가볍게 소개해 드릴게요.
-<콜링 포엠>
시인이 밤 10시에 독자에게 전화를 걸어 신작 시를 들려주는 <콜링 포엠>이벤트를 기획했던 에피소드예요. “나는 그들에게 ‘평소에 몇 시에 잠드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하고 물었는데, 그들이 잠드는 시간은 모두 내가 잠드는 시간보다 일렀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당신이 홀로 새벽에 눈을 뜨고 있을 때, 그리고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일 때, 어딘가에 초롱초롱 깨어 있는, 누구보다 늦게 잠드는 문 시인을 떠올려 주세요. 문 시인은 지금도 안 자고 있겠지.’ 하고요.”
이 책을 읽은 뒤, 새벽에 혼자 깨어 있는 날이면 이 구절을 떠올리게 되실 거예요. 나와 먼 사람이지만 이 고요한 새벽에 누군가 함께 깨어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옷 안 입고 하루 살기>
별안간 하루도 빠짐없이 옷을 입었던 사실이 화가 나서 하루 동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시를 썼던 에피소드예요.
“1만 시간의 법칙 같은 거에 따르면 뭔가가 되기 위해선 매일 세 시간씩 10년을 투자하면 된다던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10만 시간은 넘게 옷을 입었으니까 지금쯤 뭐라도 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한 사실이 문득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지요. 시인은 그런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깊이 잠수했다가 빠져나옵니다. 가끔은 엉뚱한 질문들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깨워주기도 해요.
-<예술가의 똥>
이 에피소드에서는 작가의 상상친구 뇌이쉬르마른이 등장합니다. 들어온 곳으로는 절대로 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방문으로 들어와 창문으로 나가는 존재이지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일기에 판타지가 쓰여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잖아요? 역시 일기는 뭐든지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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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근에 방영된 알쓸인잡 4화에서 이호 교수가 일기에 대해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건 미래를 생각하는 거거든요, 희망 없이는 일기를 쓰지 않아요. 단지 방향을 못 잡아서 그걸 일기에 쓰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나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애정이고 나에 대한 삶의 의지가 있는 거예요.”
절망뿐인 말을 일기에 쓸 때는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기를 쓰는 행위 자체가 어쩌면 생을 위한 몸부림일지도 몰라요. 어제 괴로운 마음으로 일기를 썼다면 어제의 일기를 잠시 멀리서 바라봐 주세요. 여전히 내가 애틋하고, 내일을 잘 살아가고픈 내가 그곳에 우뚝 서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일기시대>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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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승, <짐승일기>
“타인이 내게 궁금해하지 않을 것들을 나는 내게 궁금해하고 대답하며 산다. 그 문답이 쌓여서 나의 감각과 태도가 될 것이다. 내가 나의 타인이다. 그렇다,라고 다짐하면 어쩐지 당장 무엇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늘 다행스레 혼자다. 혼자일 때만 나는 수월하게 사람인 것 같다.”
나에 대해 말할 수 없음으로 시작되는 일기. 아픈 몸으로도 놓지 않는 생에 대한 단단한 탐구가 작가만의 문장으로 빛납니다.
조금 어둡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묵직하게
자리 잡는 작가의 날들에서 당신의 언젠가를 발견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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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의 물음표
기록은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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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학 작품을 토대로 10일마다
다채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큐레이션하여 들려드립니다.
더 많은 문밖이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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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outdoor_next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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