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벌써 새해가 밝은지 한 달이 지나고, 1월의 마지막 레터로 찾아왔어요. 신년을 맞아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 둘 이뤄가고 계신가요? 하고 싶은 일을 이뤄내기란 언제나 쉽지가 않습니다.
티브이의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오른쪽 아래에 있는 수어(수화 언어) 통역사를 보신 적이 있나요? 대한민국의 공식 언어는 한국어와 한국 수어지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들에게는 한국 수어가 낯설었던 경험이 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수어를 모어로 쓰는 농인에게는 한국어가 외국어와도 같다고 합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종종 망각하게 되는 것이 있지요. 오늘은 우리가 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를 열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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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화와 농문화 사이, '코다'의 삶
태어났을 때부터 음성 언어 대신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농문화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청각장애인이 아닌 ‘농인’이라고 불려지기를 선호합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농인들은 청각장애를 치료의 대상이 아닌,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권이 다르게 형성된 소수집단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깁니다.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농인들의 약 80%는 농인끼리 결혼을 하고, 농인가정에서 청인 자녀를 출산하는 비율은 약 90%입니다. ‘코다(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로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일컫는 말입니다. 코다는 대부분 수어와 음성 언어를 모두 사용할 줄 알고, 부모의 농문화와 사회의 청문화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이들은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농인 부모가 도와주지 못하는 영역을 홀로 헤쳐 나가며, 무음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부모의 통역사 역할까지 감당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는 어린 시절 친구로부터 놀림을 받거나, 사람들 앞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것이 싫어 부모와 말을 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부모에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끊임없이 안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농인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두 개의 문화권을 함께 경험하고 ‘코다’라는 소수자로서의 정체감을 수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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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꿈을 이룰 권리가 있다
시각 장애인 영화감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노동주 감독은 고등학교 시절 축구를 하다 갑자기 쓰러진 후 시력이 급격하게 약화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려서부터 꿈꾸던 영화감독이라는 꿈이 있지만 시각 장애인이 시각 매체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노동주 감독은 컴컴한 방 안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문서 작업이 음성으로 전환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시나리오를 적습니다. 촬영을 할 때에는 배우의 표정을 눈으로 보는 대신 눈코입을 매만져 표정을 잡아주고, 소품이나 의상 역시도 손으로 하나씩 만져가며 신중하게 결정합니다. 카메라 감독은 촬영한 영상이 화면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설명하고, 노동주 감독의 머릿속에 있던 장면이 현실로 구현될 때까지 ‘컷’ 사인을 기다립니다. 다른 감독이라면 두세 번 찍어 완성할 장면을, 그는 수십 번 반복해가며 찍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영화감독 노동주의 영화가 탄생됩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영상 매체인 영화를 만드는 것은 비장애인이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불편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를 믿고 보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협업과 배려를 통해 간극을 메울 수 있습니다.
영화감독 노동주의 이야기 더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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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의무 고용의 현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22년 12월 20일, 장애인 고용률이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의무 고용률을 따르지 않은 기관 및 기업의 명단을 공표하였습니다.
장애인 고용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기관과 기업은 436곳으로, 명단 공표 대상에는 공공기관 17곳과 삼성, GS 등 17개 대기업집단 계열사 23곳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가와 공공기관은 장애인 의무 고용률 3.4%의 80%, 300인 이상 민간 기업은 장애인 의무 고용률 3.1%의 50% 미만이면 사전 예고 대상이 되지만, 이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무신사·지마켓·컬리·크래프톤 등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해온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률은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한겨례) 말로만 지속 가능성을 외쳤을 뿐, 실제로는 최소한의 사회적 고용 책임마저 외면하는 것이 장애인 의무 고용의 현실이었습니다.
장애인 차별의 영역은 단지 장애인 차별에서 끝날 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타자를 배제하는 영역으로 확대됩니다. 나보다 느리고 움직임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일을 하지 못하고, 식당 출입에 제한이 되고, 지역 간 이동이 불가능해지는 일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그들의 삶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정상성만이 허용되는 사회로 악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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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사랑, 꿈에 대한 진심
영화 <코다>의 주인공 루비는 농인 부모와 오빠를 둔 가족 중 유일한 청인입니다.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이지만 청각장애인들끼리 고기잡이를 하는 것은 금지 되었기에 루비는 어려서부터 가족들과 함께 바다에 나가 그들의 귀와 입이 되어주었습니다. 루비는 청인 사회와 가족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도 종종 청인 문화에서 이해되지 못할 행동을 하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동급생을 짝사랑하기도 하는 평범한 십대 소녀입니다. 짝사랑하는 남자아이를 따라 교내 합창단에 들어가고, 보스턴 음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꿈을 키우기도 하지요.
<코다> 속 주된 갈등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마음에 의해 일어납니다. 루비가 노래를 불러 다른 지역의 음대에 진학하게 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소리의 세상을 이어주던 루비의 존재가 부재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루비가 농인 가족의 사회에서 떠나 완벽한 청인 문화권에 소속된다는 의미겠지요. 즉, 세상과 자신들을 이어주던 소통망의 부재와 딸을 보내는 상실감을 동시에 감내해야하는 것입니다. 루비 역시 노래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몰라주는 부모가 밉기만 합니다. 어려서부터 가족들의 일을 돕는 게 전부였던 루비는 자신의 꿈을 방해하는 부모에게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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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루비 없이 세상에서 독립할 수 없는 농인 가족과 그것을 아는 루비. 딸의 꿈을 응원해주기 위해서는 삶의 일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가족의 갈등은 서로를 위한 이타적인 선택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농인에 대한 차별은 루비와 가족들이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영화는 루비와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농인 가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루비의 시점에서 진행되던 영화는 루비가 무대에 올랐을 때에, 공연을 보러 온 가족들로 잠시 시점을 전환합니다. 음악으로 가득 찼던 영화의 음향이 한순간에 고요해집니다. 루비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들은 청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박수를 치려하지만 한 발씩 늦게 리액션을 보냅니다. 적막만이 가득 채운 공연장은 루비의 가족이 공연 중 느꼈을 지루함과 소외감을 극대화시킵니다. 이것이 농인들의 세상입니다. 잠깐의 순간동안 농인의 감각을 체험하게 된 관객들은 루비 없이 지내야할 가족들의 막막함을, 그럼에도 루비의 꿈을 위해 기어이 떠나 보내준 그들의 사랑을 실감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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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소외감을 알아챈 루비는 이후 공연에서 노래를 하는 동시에 수어로 가사를 표현하여 가족들 또한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냅니다. 공연을 끝내고 집으로 온 루비는 아버지에게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마음을 말하는 노래”를 들려줍니다. 루비와 가족은 서로에게 걸림돌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들은 신체적 한계와 사회적 차별로 인해 벌어진 균열의 자리를 사랑으로 채워 서로의 진심을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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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라는 정체성으로
루비에게 의지했던 가족은 루비가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남으로서 마침내 독립하게 됩니다. ‘CODA’는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를 의미하지요. 동시에 악곡의 끝에서 음악과 현실의 경계를 이어주는 결미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청인의 세계에도, 농인의 세계에도 소속되지 못한 루비는 그 경계에 발을 걸친 ‘코다’의 정체성으로서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려 합니다. 틴에이저의 성장 영화 같기도, 가족 영화 같기도 한 이 영화는 모두의 사랑과 행복을 빌어주며, 그렇게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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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들리지 않아도 따뜻한 언어로 사랑한다고 말하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내달 10일,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요!🚪
<코다>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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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SF 소설가 김초엽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총 일곱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방금 떠나온 세계> 속의 소외되고 배제된 인물들은 사회의 모순에 맞서고, 사회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나간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타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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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의 물음표
‘코다’처럼 소수자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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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학 작품을 토대로 10일마다
다채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큐레이션하여 들려드립니다.
더 많은 문밖이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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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outdoor_next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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